전쟁이 정치의 수단이라면 무기는 전쟁의 도구이다. 그러므로 무기는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여 사용된다. 오늘날은 파괴하되 죽이지 않는 전쟁이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무기 또한 그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

그것은 비살상형무기(Nonlethal Weapons)라는 이름으로 매우 활발히 연구· 개발되고 있다. 모두를 죽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할 방법도 아직은 없다. 어쩔 수 없어 파괴를 완벽히 피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인적 희생은 최소화하여 적의 전투력을 무력화하자는 것이 연구 목표이다. 더 나아가 좀더 진보된 기술을 갖게 된다면 그야말로 전혀 파괴하지 않고 전혀 살상하지 않으면서 전쟁의지만을 분쇄할 수 있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은 그들이 상대해야 할 바르샤바조약기구(WP)군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열세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토군은 이를 보상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성자탄(Neutron Bomb)을 사용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중성자탄은 원자폭탄의 일종으로 열 및 폭풍효과는 가능한 한 줄이고 방사선 효과, 즉 중성자에 의한 투과 효과를 극대화해 파괴는 최소화하되 살상을 극대화한 신종의 무기였다.

바르샤바군이 대거 침략해올 때 중성자탄을 터뜨리면 전차나 장비 속의 사람만 죽이고 장비는 고스란히 접수할 수 있다는 그야말로 동화 같은 구상이었다. 그같은 구상은 수적으로 많고 세력이 강한 상대를 맞아 싸워야 하는 약자측의 최선의 선택이라고 당시에는 변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 그 폭탄은 대단히 비인도적이고 위험천만한 전쟁도구라는 비난을 크게 받았다. 반경 4~6㎞의 공간에 생명체란 흔적도 없고 각종 전쟁도구들만이 나뒹군다고 생각해 보라.

냉전이 끝난 직후에 있었던 걸프전은 전혀 다른 발상과 양태의 전쟁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 전쟁은 우리들에게 새로이 시작되는 전쟁의 한자락을 보여 주었다. 걸프전의 기본적 수행방침은 선별적 파괴와 살상의 최소화였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 국민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여 대규모의 파괴와 대량의 살상을 자행한다면 이라크가 궤멸되기 이전에 다국적군 내에 있던 회교 국가들이 전선이탈을 자행할 우려가 더 크고 전쟁의 명분과 발판을 잃을 염려가 컸다. 그래서 그들은 침략의 근원, 침략의 수단만을 골라 파괴하고 가려서 살상한 것이다. 지극히 계산적인 전쟁이었다. 그것이 바로 장차전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


◆ 전자기적 기술(Electromagnetic Tech)을 응용한 비살상형 무기

전자기펄스(EMP : Electromagnetic Pulse)를 응용한 무기들은 전자기적으로 동작하는 장비나 설비에 강력한 전자기적 파동을 형성하여 충격을 줌으로써 기능을 마비케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국가는 거미줄처럼 펼쳐진 각종 정보 유통망에 의해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 유통망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전자기적 신호에 의한다. 따라서 그러한 네트워크에 충격을 주어 기능을 마비케 한다면 그 국가의 기능은 마비되거나 일대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EMP는 자연상태에서는 낙뢰에서 크게 발생하고 인위적으로는 핵폭탄이 공중에서 폭발할 때 넓은 지역에 걸쳐 강력하게 나타난다. 즉 소형의 핵폭탄이 고공에서 폭발하면 거기서 발생하는 EMP는 전리층을 혼란케 함은 물론 공중과 지상에서 사용되는 각종 전자기파 응용장비의 신호입력 부위 및 출력부분에 강한 전자기적 충격을 주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

작전수준에서 응용할 수 있는 보다 소형의 EMP 발생장치는 통상 진행파관(TWT :Travelling Wave Tube)의 원리를 응용한다. 이러한 소형의 장비는 특정 통신장비·레이더 등을 무력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응용하여 조종·항해하는 항공기 ·미사일 및 선박 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조사(Scanning)하면 외부적으로는 아무런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추락케 하거나 작전불능 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휴대용 컴퓨터나 CD 플레이어를 작동할 때 생기는 미약한 전자기파나 휴대용 전화기에서 발생하는 미약한 전파에 의해서도 대형 여객기나 헬기의 비행에 장애를 준 사례는 종종 보고된 바 있다. 강력한 전자기장은 자연적인 환경을 크게 변하게 할 수도 있다. 특정대상물에 강력한 전자기장을 형성하면 그 영향력 범위 내의 물질의 분자 및 원자의 배열구조가 변하여 전혀 새로운 환경이 형성됨은 이제는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무기(CVW : Computer Virus Weapons)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컴퓨터가 현대 국가 신경조직의 중앙부에 자리잡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중요한 컴퓨터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기능이 마비된다면 군사작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전쟁수행 과정에까지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걸프전 때 미국이 이라크의 방공망과 국가 지휘체제를 전자기적 방법으로 교란할 때 이라크측의 각종 컴퓨터 망에 침투하여 해킹은 물론 바이러스를 주입하였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진 비밀에 해당한다.

저준위 레이저 무기(Low-Energy Laser Weapons) 등의 레이저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대단히 폭넓다. 거리측정, 조준, 정밀유도 등은 가장 초보적인 응용사례이고 오늘날은 레이저를 직접 조사하여 표적을 파괴하거나, 전자방해에 의한 레이더(RADAR : Radio Detecting and Ranging)의 기능 마비를 대비한 제2의 탐지수단(LADAR : Laser Detecting and Ranging)으로도 연구·개발되고 있다. 저준위 레이저는 여러 응용사례가 있으나 비살상형 무기로 연구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는 화기의 조준장치에 손상을 주거나 조준하는 조작수의 망막에 자극을 주어 일시적으로 장애를 주거나 영구적으로 실명케 한다. 저준위 레이저는 통상 비교적 소형화할 수 있고 전력소모가 크지 않은 고체 소재 레이저를 많이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루비 레이저는 광의 확산도가 적고 취급하기가 용이하여 널리 사용된다. 레이저는 휘지 않고 지향성이 높으므로 소총보다 명중도를 높게 할 수 있어 조준장치 등 광학장비를 파괴하는 것보다 인마 살상용으로 더 널리 사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공군참모총장 정책보좌관 권재상 대령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10.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