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갑(板甲)은 삼국시대 가야에서 주로 사용한 갑옷이다. 비교적 큰 철판을 가죽으로 묶거나(혁철·革綴) 못으로 고정(정결·釘結)해서 만든 갑옷이 판갑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가 착용한 갑옷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주로 상반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갑옷의 길이가 짧다는 의미에서 단갑(短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판갑을 완전한 세트로 갖춰 입을 때는 목·팔·어깨·허벅지·무릎을 보호하는 별도의 갑옷 부속구를 추가로 장착하기도 한다.

삼국시대의 갑옷에는 판갑 외에 비늘갑옷(찰갑·札甲)도 있다. 이것은 가죽이나 철판으로 된 비교적 작은 갑옷 미늘을 연결해서 만든 갑옷이다.

고고학자인 숭실대 최병현 교수는 “삼국시대에 보병은 주로 판갑을 착용하고 기병은 비늘갑옷을 착용했다”고 설명했다. 판갑은 갑옷 자체에 신축성이 없기 때문에 기병이 착용하기는 힘들다는 것. 용도나 형태에서 삼국시대 판갑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중보병(重步兵)용 판갑을 연상시키는 이국풍의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별로 보면 가야의 갑옷은 대부분 판갑이고 고구려는 비늘갑옷이다. 신라나 백제는 초기에 판갑을 주로 사용하다가 후대로 갈수록 비늘갑옷의 비중이 높아진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판갑을 흔히 사용했다.

서양에서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거의 전 시기 동안 판갑이 가장 인기 있는 갑옷 종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만 사용됐을 뿐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판갑을 사용하지 않았다. 삼국시대 판갑은 아직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갑옷 종류다. 그 탓인지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판갑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10여년 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의 드라마 ‘삼국기’나 역시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황산벌’의 소품으로 비늘갑옷은 나오지만 판갑은 나오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일본에서는 대량의 판갑이 출토됐으나 한국에서는 몇 점 발견되지 않아 한국에서 출토되는 판갑을 일본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경주·울산·고령·김해·함안 등 경상남북도 일대에서 판갑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1997년에는 경북 경산시 임당동 고분에서 판갑을 만들 때 사용하는 나무틀도 발견됐다. 삼국시대에 한국에서도 판갑을 자체 제작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일본의 판갑 자체가 한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2.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