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리 357호의 의무병이었던 박상병은 첫 포탄에 조타실이 깨지면서 파편에 쓰러진 정장 윤영하 대위를 몸으로 덮고 함교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방탄조끼 밑으로 줄줄 흐르는 핏물을 보며 소용 없음을 깨닫고는 다시 나가 쓰러지는 전우들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숨기지 않고 뛰어다녔다. 당연히 총을 쏘는 전투병은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 사격하게 마련이지만 부상병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 의무병은 전투시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총탄에는 눈이 없다….”

전쟁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2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의 4강 진출로 들떠 있던 시기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서해 교전의 이야기다.

당시 국군수도병원 군의관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의무병을 치료하면서 전해 들은 교전의 참상을 적은 이 글이 인터넷을 타고 세상에 전해지면서 많은 국민이 가슴 아파했고, 지난해에는 ‘유진아 네가 태어나던 해에 아빠는 이런 젊은이를 보았단다’라는 수필집에 실려 다시 한 번 감동을 자아냈다.

병사들 사이에서 의무병은 흔히 편한 보직을 의미하는 ‘땡보(직)’라는 은어로 통한다. 미국에서도 평소에는 의무병을 ‘메딕’(medic)이라고 가볍게 부르지만 전장에서 의무병의 헌신을 보고 나면 심지어 ‘닥터’라고까지 고쳐 부른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명예 훈장을 받은 두 의무병의 이야기도 깊은 감명을 전해 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2월, 미 해병 제5사단 27연대 3대대는 이오지마(유황도)의 362고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의무병인 존 윌리스도 파편상을 입어 선임이 치료소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부상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걸음에 최전선으로 달려간다. 응급처치하고 출혈이 심한 전우에게 혈장을 주입하던 그에게 수류탄이 날아들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밖으로 던져내기를 여덟 차례. 하지만 부상자를 돌보는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만 아홉 번째 수류탄이 그의 손에서 폭발하면서 전사하고 만다.

같은 해 4월, 미 제7기갑사단 48연대는 독일의 알레메르트 지역을 공격하고 있었다.

의무병인 토머스 켈리가 속한 1소대는 협곡을 따라 측면 기동을 하던 중 수풀에 매복해 있던 적군으로부터 기관총과 전차의 집중 사격을 받고 후퇴한다. 그러나 전선에 고립된 부상자들을 구하기 위해 켈리는 기관총 포하의 300야드 거리를 열 차례나 기어 왕복하면서 부상 전우들을 구출해 낸다. 그와 함께 자원해 나선 두 동료가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건군 56주년, 그 반세기 동안 한국전쟁과 여러 전투를 통해 이 땅의 많은 젊은이가 산화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름 모를 의무병들이 있었음을 또한 기억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0.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