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야전에서는 유행성출혈열 발생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배설물을 통해 한탄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쥐들이 서식하는 산과 들에서 군 훈련이 잦기 때문에 유행성출혈열은 군인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 질환 중 하나다.

30여 년 전 한국인에 의해 이 병의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군인들은 보이지 않는 적군과 싸워야 했고, 원인 불명의 괴질로 하나 둘씩 쓰러져 가는 전우를 보면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부터 4년간 미국 중서부에 주둔한 북군 병사 가운데 무려 1만6000여 명의 급성 신염 환자가 발생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야외에서 텐트 생활을 하다가 전투시에는 참호 안에서 기거한 군인들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4년 프랑스·벨기에의 플랑드르 지방에 주둔한 영국군 중에서 수천 명의 괴질 환자가 발생했는데 공통적으로 갑작스러운 발열과 함께 두통·구토와 허리 통증을 호소하면서 단백뇨·혈뇨를 보이다가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영국 군의관들은 이 환자들이 대부분 참호 속에서 전투하던 군인들이었기 때문에 ‘참호 신염’(trench nephritis)으로 병명을 붙였는데 이후 참호에 있지 않은 군인들에게서도 괴질이 발생, ‘전쟁 신염’(war nephritis)으로 바꿔 불렀다. 당시 새로 입원하는 환자의 5%, 병실 환자의 10% 이상을 신염 환자들이 채울 정도로 그 수가 많았다.

1936년 5월 소련과 만주 국경지대에 주둔한 일본군에게서 원인 불명의 괴질 환자가 수십 명 발생했다. 마찬가지로 고열과 두통·구토·복통·출혈 등을 동반하는 신염 환자들이었는데 일본 군의관들은 이전까지 알려진 렙토스피라증이나 성홍열과는 또 다른 양상의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발생, 높은 치명률을 보이자 상부에 보고했다.

1941년 만주에 주둔한 100여만 명의 일제 관동군 가운데 1만2000여 명의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발생하고 사망률이 20~30%에 이르렀다고 하니 2000명 이상의 일본군이 괴질로 사망한 것이다.

일본군은 1942년 2월19일 이 괴질을 전시전염병으로 지정, 유행성출혈열이라는 병명으로 통일하고 악명 높은 세균전 부대인 731부대 등을 동원, 101개의 인체 표본을 만드는 등 온갖 생체 실험에 매진했지만 괴질의 원인 규명에는 실패했다.

1943년 여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주둔한 독일군에서도 이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급성 신염 환자 수천 명이 발생했고, 1945년 독일 패망 후 유고슬라비아 포로수용소의 독일군 포로 중 6000명에게서도 급성 신염이 발생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온 유행성출혈열의 파괴력은 다음에 이어질 한국전쟁에서 다시 한 번 맹위를 떨치게 됐고 이를 통해 원인 규명을 위한 전세계의 다각적인 노력이 집중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10.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