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조종사 다크 펜델턴 중위는 실리콘 밸리에서 극비리에 진행되는 초소형화 실험의 비행정 조종사 임무를 띠고 생명체 속으로 투입된다. 물론 실제 상황이 아니다. 198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총제작을 맡은 영화 ‘이너스페이스’(Innerspace)에 나오는 장면이다.

인체를 탐험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이전 작품에도 나타나 있다. 미국의 생화학자이자 공상과학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66년 소설 ‘환상 여행’(Fantastic Voyage)을 통해 작게 축소된 사람들이 치료 잠수정을 타고 소련 과학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뇌혈전증을 레이저로 제거하는 모습도 그려 냈다.

영화·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조금씩 현실 세계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뉴스를 통해 알려졌듯이 캡슐 내시경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캡슐 내시경을 세계 최초로 고안·개발한 사람은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무기개발연구소에서 근무한 가브리엘 이단 박사다.

그는 국방부 방위 연구 과제의 일환으로 미사일 유도에 필요한 전자시각 영상 장치를 개발하던 중 8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보스턴으로 떠난다.

이곳에 있는 이스라엘계 회사에서 방사선과 초음파 의학 영상 연구를 맡은 그는 이스라엘 육군 군의관으로 있다가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 의대로 연수 온 소화기내과 의사 에이탄 스카파를 만난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은 두 이스라엘인은 자주 서로의 관심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스카파는 내시경으로 식도·위·십이지장의 일부와 대장을 검사할 수 있지만 구불구불하고 5m나 되는 소장은 접근이 어렵다는 점을 이단에게 설명했다.

내과 의사의 고민을 들은 이단은 약처럼 쉽게 삼킬 수 있고 소장도 관찰할 수 있는 소형 ‘미사일’ 개발의 꿈을 안고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94년 1월 특허를 얻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하게 된 이단은 98년 무선 내시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영국인 의사 폴 스웨인과 드림팀을 꾸며 캡슐의 크기, 영상의 전송 파워, 캡슐 내시경의 배터리 용량, 영상의 화질 등과 같은 숙제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스웨인 박사는 99년 8월 자신이 직접 첫 번째 캡슐 내시경을 삼킴으로써 안전성을 입증한다. 마침내 2001년 임상 연구가 끝나고 미국·유럽에서 인증을 얻음으로써 캡슐 내시경이 상용화됐고 이단은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게 된다.

지름 1.1cm, 길이 2.6cm, 무게 3.7g으로 비타민처럼 작아 ‘카메라 알약’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캡슐 내시경은 약 8시간 동안 장내에 머무르면서 1초에 두 장씩 사진을 찍어 6만여 장에 달하는 영상을 환자의 허리에 부착된 기록 장치로 보내 준다.

캡슐 내시경을 이용하면 기존의 내시경이 미치지 못하는 소장이나 미세한 출혈 부위를 확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캡슐 내시경이 만능은 아니다. 캡슐이 장을 통과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고 조직검사나 내시경적 치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사일 연구에 축적된 노하우가 캡슐 내시경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군의 첨단 기술과 기발한 아이디어의 접목이 미래에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지 사뭇 기대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2. 3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