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탈린그라드 전투-제2차대전 동부전선 전투 전환점

제2차 세계대전 동부 전선 전투의 한 획을 그은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독일 제6군의 항복 선언으로 막을 내렸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항복 선언과 함께 굶주림에 지친 9만 명의 독일 병사는 소련 측에 투항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소련군의 학대 속에 탈진해 쓰러졌고 추위에 얼어 죽어 갔으며 창궐하는 장티푸스에 희생됐다. 걸을 힘조차 없어 시내에 누워 있던 나머지 8만5000명의 독일 병사에게 돌아간 것도 죽음뿐이었다.

독일군은 1942년 하계 공세를 통해 소련 돈바스·카프카스 지방의 석유·광물 자원을 탈취하고 터키와의 접촉을 확보, 소련을 궁지에 몰아넣을 계획이었다. 독일군의 초반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8월 말 독일 제14기갑군단이 스탈린그라드 북쪽에서 볼가 강에 도달할 즈음 급격히 공격 기세가 떨어졌다.

볼가 강가를 따라 길게 뻗은 도시 스탈린그라드 전면에서 소련군 2개 야전군은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상태에서 도시의 콘크리트 더미를 방패 삼아 격렬히 저항했다. 전투 양상은 양군 사이에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소모적인 시가전으로 변했다.

스탈린그라드는 이름이 갖는 상징성 외에 볼가 강의 수운을 통제하는 중요한 전략적 요지였기 때문에 양측 모두 물러날 수 없었다.

소련군은 11월19일 마침내 전면적인 반격에 돌입했다. 독일군 방어선은 일거에 무너졌고 총체적 혼란이 야기됐다. 파울루스가 지휘하는 독일 제6군에 퇴각은 시급했다. 독일 제6군이 소련군에 포위당한 22일 밤 파울루스는 예하 지휘관들과 탈출 준비를 논의했다.

그러나 시시각각 운명의 고리가 조여 오는 결정적 순간 독일의 최고 지도자 히틀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각 부대에 현 위치를 고수시킨 채 제6군의 직속 상관이자 이 지구를 관할하는 독일 B집단군 사령관이던 폰 바익스를 폰 만슈타인으로 교체한 것이다.

만슈타인은 전선에 도착하는 데 사흘을 허비한다. 즉각적인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 이뤄진 고급 지휘관의 교체로 독일군은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만슈타인은 포위망이 완성되고도 이틀이 지나 부임했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소련군은 이미 단단히 포위를 조이고 있었다. 독일군 최고의 전략가로 손꼽히던 만슈타인도 손을 쓰기 어려워진 상태에서 탈출에 필요한 연료·탄약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독일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두 달 반을 버티다 결국 항복했다.

독일군의 전통대로 지휘관을 교체하지 않고 각 부대에 과감한 행동의 자유를 줬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독일 제6군은 다소간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을 탈출, 요긴한 전력으로 쓰였을 것이며 1942년부터 43년에 걸쳐 100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며 전 전선이 붕괴 직전으로 가는 위기도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아군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과 굶주림의 고통 속에 죽어 간 제6군 장병들의 비극은 말할 필요도 없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이 패전한 이유를 한두 가지 요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전 중 무리한 지휘관 교체가 전투 흐름에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임이 분명하다.

〈채승병 전사연구가〉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7. 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